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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건강권, 학교보건 정책
김지학(중흥고 보건교사)
[2016-06-03 오후 3:56:00]
 
 
 
간혹 이렇게 기특한 학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깊은 감동을 주는 녀석들이 있다. 교직에 임용된 지 3-4년 쯤 되었을까. 보건실로 한 여학생이 큼지막한 상자를 들고 와서는, 대뜸 보건실에 기증을 하겠다는 거다. 내용인즉 자신이 퀴즈 이벤트에 공모해 당선되었는데, 생리대를 상품으로 받았다면서 아이들과 같이 쓰고 싶다며 직접 보건실에 들고 온 것.  
당시 생리대가 급하게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서 보건실에 생리대를 비치해두고, 필요한 학생들에게 지급하고 있었다. 문제는 정해진 보건실 의약품 예산 중 일부를 할애하여 생리대를 구입해 비치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생리대를 지급하다보면, 정작 의약품을 구입할 비용이 축소되는 여건이었다. 한정된 학교 예산중에 일정 부분 보건실 의약품 예산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예산이 편성되기 때문에, 의약품 예산을 한없이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자구책으로 나름의 보건실 생리대 지급 지침을 마련했다.
 
필요한 아이들에게 생리대를 지급하되, 의무는 아니지만 여건이 되면 생리대를 갚아달라는 것이었다. 대신 아이들이 생리대를 받아갈 때는 혹시 수치심을 갖지 않을까 싶어 학년 반, 이름을 보건일지에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빌려달라는 개수만큼 주고, 학교의 여건을 설명했다. 평균 10명이 빌려 가면 2-3명이 갚아주었는데, 아이가 학교의 생리대 수급 사정(?)을 알고는 다른 여학생들을 위해서 기꺼이 공유를 결정한 것이었다. 한동안 아이가 기증한 생리대는 급하게 필요한 학생들에게 요긴하게 사용됐다.  
생리대 때문에 보건실을 찾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하나의 난제가 내가 출장 등을 가서 학교에 없을 때 생리대를 구할 곳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친구에게 빌리면 되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수업 중간에 갑자기 필요하거나, 특별실이나 운동장에서 수업하다보니, 교실 문이 잠겨 미리 챙겨왔지만 사용을 못하는 경우, 보건교사 부재시 보건실 담당자로 지정된 체육 선생님께서 남자 선생님이라서 말씀 못 드린 경우 등등 난처한 경우는 무궁무진했다.  
이런 사정이 널리 공유되면서 학교 내 여러 협의를 거친 후 생리대 자판기 설치가 추진되었다. 그런데, 낡은 학교여서 전기 배관 등이 꼬여, 어쩔 수 없이 화장실 안이 아니라 화장실 밖에 설치된 게 문제였다. 당시 남녀공학이었는데, 철이 덜든 일부 남학생들이 자판기에서 생리대를 뽑아 장난을 치는가 하면, 아이들이 수도 없이 지나다니는 복도에서 자판기로 생리대를 뽑는 게 민망하다는 의견은 지속되었다.  
다행인 것은 교장 선생님께서 아이들 건강에 관심이 많아 보건교육 의무화를 명시한 학교보건법이 개정되기 전이었는데도, 보건 수업을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하여, 인문계 고교로는 드물게 성교육 시간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성과 건강을 다루면서 아이들의 성의식이 조금씩이라도 당당하게 개선되는 게 나름의 성과였다. 결국 2-3년이 지나서야 학교 환경 개선 예산이 내려와 화장실 전기 배선 등을 교체하고, 정비하면서 생리대 자판기는 마침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깔창 생리대 논란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여기 저기 온정의 손길도 늘어나고, 정책적인 접근도 고민하고 있어, 현장의 보건교사로서는 참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현장의 사정을 폭넓게 살펴보는 시선은 부족한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생리대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여학생들이 학교에서 접하는 건강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학교보건 예산은 어느 정도로 책정되어 있는지, 학교에 생리대 자판기는 설치되어 있는지, 아이들이 건강한 성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보건교육은 법에서 정한대로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시선은 너무 미흡한 것 아닌가 싶다.  
생리대에는 학교보건 예산 편성, 도덕적 해이, 보건교육 시행, 업무갈등, 학교 시설 환경 개선 사업, 학생 건강 의제화 창구의 부재 등 다양한 문제가 꼬여있다 이 얽힌 실타래를 점검하지 않고,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 자문자답하면 안타깝게도 “아니오”다.

부천자치신문(kms08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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