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해진 여권이 확립되어야"
 논설주간 하재준
 [2019-09-23 오전 8:22:16]

사회를 뒤흔들었던 미투(metoo)가 1년이 넘도록 사회를 어지럽혀만 놓고 그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삐걱거리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러할까? 모순된 사회제도나 의식 때문일까? 참으로 답답하다. 하루 속히 맺힌 원한이 풀려져야 하고 다시는 인권이 무시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인권이 무시되면 사회의 근본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에 매우 심각해진다.   
 
인류 근원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원리가 분명하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기독교 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 이유는 인류 최초의 가정이 아담과 하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며 또 어느 이론이나 철학에서도 그 근본 이치를 밝혀 논한 바를 찾을 수 없기에 그러하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차별이 되어야 하고, 계급이 없을 수 없다.’고 주장했던 옛날의 사상은 물론 있다. 그러나 그 사상은 추호도 동조할 수 없기에 제쳐둔다.
 
기독교 사상은 인간에게 준 위대한 선물이다. 그 사상에 근거하여 유엔헌장의 정신이 이루어졌다. 그 주된 골자를 보면 「인류는 신(神)의 같은 자녀이기에 동등(同等)해야 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고, 서로 위로하여 인간가족을 이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원칙이 없었다면 물리적인 힘의 논리에 의하여 남녀차별은 구체화 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원칙인양 진리처럼 굳어져 그 차이는 더 심화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
 
자녀관계나 부부관계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절대적으로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가족제도요, 사랑의 요체다. 그런데도 인류역사를 볼 때 고대사회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그 시대에 따라 차이는 있을지언정 남녀 차등이 있어온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의식이 오래도록 이어지는 동안  굳어진 의식이라서 아무리 좋은 제도가 제정되었을 지라도 하루아침에 바꾸어질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예의 하나로 1446년(세종28) 훈민정음을 반포할 당시 그 서문에는 「이르고저(기본형:이르다)」란 말이 있다. 이 뜻은 ‘말하고자,(말하라)’인데 오늘날에도 ‘이르라, 일러라.’ 하는 말이 통용되고 있다. 이같이 우리의 의식이나 언어도 법령처럼 당장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점차 고쳐지고 변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다. 그 하나로 ‘여자는 남자의 성욕을 충족시켜주고 남자의 자식을 낳아 대(代)를 이어주며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존재로 취급받아왔었다. 그러한 의식이, 조선시대부터 대대로 이어오는 동안 굳어졌고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다. 이것이 현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미투(me too)현상이다. 자기 자신의 감정마저 조절하지 못하는 몰지각한 자들 중에 대부분이 지식인들이니 정말 한심스럽다.  
 
사랑의 관계는 정신적인 결합이요, 상호존중심에서 비롯된다. 그 뒤에 육체적 결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채 육체적 결합은 권력과 금력과 주먹 등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니 정말 치욕이요, 모멸이다. 그러기에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자살로 마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힘의 논리에 의하여 남녀의 결합이 사랑 없이 이뤄진다면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인격이 파괴되어 절망뿐이다. 남녀의 올바른 관계는 오직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창조주의 뜻이다. 오늘날 심각해진 여권이 확립되지 아니하면 절대자의 명령에 불복하는 것이니 이는 불을 보듯 너무 뻔한 일이 될 것이다.*